공간과 경험
빛과 색, 여백으로 완성한 병원 인테리어

예쁜 병원 인테리어를 참고할 때는 빛이 들어오는 방향, 색과 재료의 조합, 가구 사이의 여백, 환자가 앉아 바라보는 풍경을 함께 살펴볼 수 있습니다. 국내외 실제 병·의원 6곳에서 그 차이를 읽어봅니다.
이 글에서 살펴볼 내용
대표 사진: THE KYEOL Clinic · 사진 © Seeun Park · 설계: Design Studio Mono
서울의 작은 의원부터 정원을 품은 치과까지. 여섯 공간에서 찾은 아름다운 병원의 서로 다른 표정.
병원 인테리어 사진을 넘기다 보면 손가락이 멈추는 순간이 있다. 창가의 소파와 부드러운 빛, 나무결이 보이는 의자. 사진만 보고도 ‘여기에 잠깐 앉아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장면이다.
그 사진에서 마음에 들었던 것은 무엇일까. 의자의 모양일까, 벽의 색일까. 다시 보면 가구 옆으로 들어오는 빛이나 아무것도 놓지 않은 벽이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같은 우드를 사용해도 어느 병원은 거실처럼 아늑하고, 어느 병원은 갤러리처럼 담백하다. 초록색 접수대가 공간의 중심이 되는 치과가 있는가 하면, 라벤더색 천장 아래에서 환자를 맞이하는 소아과도 있다.
서울과 암스테르담, 안트베르펜, 멜버른, 키이우의 병·의원 여섯 곳을 사진으로 살펴봤다. 마음에 드는 장면을 따라가며, 우리 병원의 분위기는 무엇으로 만들어지는지 함께 생각해보자. 각 사례의 설계 설명은 프로젝트 링크에서 더 살펴볼 수 있다.
빈 공간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병원

사진 © Seeun Park · 설계: Design Studio Mono
밝은 벽과 바닥 사이로 짙은 목재 기둥이 보인다. 반투명한 파티션에는 빛이 머물고, 가구 사이에는 넉넉한 간격이 남아 있다. 서울의 THE KYEOL Clinic 사진에서 오래 눈길이 머무는 곳은 이렇게 비워둔 자리다.
Design Studio Mono가 설계한 191㎡ 피부과 클리닉은 전통 건축의 ‘여백’을 공간의 중심에 두었다. 재사용한 목재 기둥, 한지와 아크릴을 결합한 파티션, 트래버틴 석재가 그 분위기를 만든다. 밝은 바탕 덕분에 오래된 나무의 결도 또렷하게 보인다. THE KYEOL Clinic 프로젝트
이 사진을 보고 나면 우리 대기실의 벽을 떠올리게 된다. 안내문과 포스터, 장식이 한곳에 모여 있지는 않을까. 필요한 안내가 잘 보이는 자리를 정하고 주변에 빈 공간을 남겨두는 것만으로도, 벽을 바라보는 인상은 달라질 수 있다. 새 장식을 고르기 전에 지금 놓여 있는 것들을 한번 살펴보고 싶어진다.
대기실에 거실의 표정을 더하다

사진 © Cheongchun Studio · 설계: Bananafish · 바나나피쉬
회색 소파 앞에 목재 안락의자가 놓여 있다. 커튼을 통과한 빛이 바닥에 닿고, 천장 가장자리의 조명은 벽을 따라 부드럽게 번진다. 정갈한 거실을 떠올리게 하는 이곳은 서울 선릉 인근의 전수연 정신건강의학과 대기실이다.
공간의 규모는 69㎡. 바나나피쉬는 밝은 우드와 크림색 벽, 간접조명을 사용하고, 입구에서 접수대를 바로 마주하지 않도록 진입 방향을 틀었다. 좌석의 시선과 대기실·상담실 사이의 거리도 고려했다고 설명한다. 작은 의원의 분위기를 가구와 배치로 풀어낸 사례다. 전수연 정신건강의학과 프로젝트

사진 © Cheongchun Studio · 설계: Bananafish · 바나나피쉬
의자를 고를 때는 보통 정면 사진을 본다. 하지만 그 의자에 앉은 사람이 바라보는 풍경도 함께 생각해보면 어떨까. 다른 사람과 바로 눈이 마주치는 자리인지, 접수대가 얼마나 가까이 보이는지, 창가의 빛이 닿는 자리인지. 마음에 드는 의자를 찾았다면, 그 의자를 어디에 놓을지도 같이 그려볼 수 있다.
치과 의자에서 하늘을 바라본다면

사진 © Ewout Huibers · 설계: i29
치과 의자에 누워 하늘을 볼 수 있다면 어떤 기분일까. 암스테르담의 Dentista에는 그 풍경을 만드는 둥근 천창이 있다. 진료실 곁으로는 작은 정원이 보이고, 대기실에서는 녹색 접수대와 식물이 눈길을 끈다.
i29가 설계한 180㎡ 치과는 흰색과 우드, 녹색을 연결하고 중앙에 정원을 두었다. 대기실의 식재는 바깥 거리와 실내 사이에 경계를 만들고, 녹색 접수대는 대기 공간과 진료 공간을 나눈다. 초록색이 사진의 포인트가 되면서 공간의 구성에도 참여한다. Dentista 프로젝트

사진 © Ewout Huibers · 설계: i29
이곳의 사진에서는 환자가 바라볼 방향까지 인테리어의 일부가 된다. 대기할 때, 진료 의자에 누웠을 때, 서로 다른 자리에서 빛과 녹색을 만날 수 있도록 계획한 것이다. 우리 병원에서도 환자가 앉았을 때 무엇이 보이는지 살펴볼 만하다. 중정을 만들기 어려운 공간이라면 창가의 자리나 벽에 둘 자연 사진부터 생각해볼 수 있다.
나무와 콘크리트 사이의 온도

사진 © Jonas Bjerre-Poulsen · 설계: Norm Architects
정원을 품은 치과 다음에는 재료의 질감에 시선이 머무는 치과가 있다. 벨기에 안트베르펜의 Dentology+다. 콘크리트 계단 옆으로 오크 패널이 이어지고, 반투명한 재료가 빛을 받아들인다. 단단한 표면과 나무결이 가까이 놓인 장면이 담백하면서도 깊이 있어 보인다.
Norm Architects는 오크와 콘크리트, 가벼운 패브릭을 공간마다 반복해 통일감을 만들었다. 자연광이 드는 밝은 위층과 낮은 천장의 묵직한 지하층은 각각 다른 분위기로 계획했다. 위층에는 오브제와 빛을 이용해 갤러리 같은 공간감을 담고자 했다. Dentology+ 프로젝트

사진 © Jonas Bjerre-Poulsen · 설계: Norm Architects
비슷한 베이지색 공간에서도 느낌이 달라지는 이유를 이 사진에서 찾아볼 수 있다. 매끈한 면과 거친 면, 빛을 반사하는 면과 부드럽게 받아들이는 면이 함께 보이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사진을 참고할 때 벽의 색상에 더해 그 옆에 놓인 재료도 살펴보면, 마음에 들었던 분위기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커튼과 가구로 만드는 병원의 개성

사진 © Willem-Dirk du Toit · 설계: Foolscap Studio
병원에서 커튼은 빛을 가리고 시선을 나누는 물건이다. 멜버른의 ODE Dermatology 사진을 보면, 커튼의 색과 질감이 공간의 분위기를 만드는 데도 얼마나 많이 참여하는지 알 수 있다. 곡선형 선반의 조명, 부드러운 색의 천장, 가구와 패브릭이 함께 눈에 들어온다.
Foolscap Studio가 설계한 이 피부과 클리닉은 호텔과 리테일 공간의 접객 방식을 참고했다. 기존 건물의 디테일에 반투명하고 반사되는 재료, 벨벳 커튼을 더하고, 중앙에는 진료를 기다리는 라운지를 계획했다. 접수 공간과 진료 공간에 서로 다른 표정을 부여한 사례다. ODE Dermatology 프로젝트

사진 © Willem-Dirk du Toit · 설계: Foolscap Studio
인테리어를 준비하다 보면 접수대, 의자, 커튼을 하나씩 따로 고르게 된다. 각각 마음에 드는 물건이어도 한 공간에 모였을 때의 느낌은 다시 봐야 한다. 이 사례의 사진을 보며 ‘우리 병원에서 보여주고 싶은 분위기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먼저 적어두면, 다음 물건을 고를 때 돌아올 기준이 생긴다.
천장부터 라벤더색으로

사진 © Andrii Bezuglov · 설계: ater.architects
마지막 사진의 천장은 옅은 라벤더색이다. 그 아래로 밝은 우드 패널과 둥근 좌석이 이어진다. 진료실 사진을 넘겨보면 이번에는 오렌지색 수납장이 나타난다. 지금까지 살펴본 병원들과는 색을 쓰는 방식이 또 다르다.
키이우의 Doctor U. 2.0은 85㎡ 규모의 소아 외래 클리닉이다. ater.architects는 아이의 눈높이를 고려해 공간의 비례를 계획하고, 대기실에 아치형 좌석을 두었다. 의료기구와 물품은 맞춤 수납 가구 안에 정리했다. 라벤더색과 오렌지색은 밝은 우드와 바닥을 바탕으로 각각 제자리를 찾는다. Doctor U. 2.0 프로젝트

사진 © Andrii Bezuglov · 설계: ater.architects
좋아하는 색을 병원에 쓰고 싶다면 이 사진에서 사용한 위치와 면적을 살펴볼 수 있다. 천장에 넓게 이어지는 색과 수납장에 또렷하게 들어가는 색은 역할이 다르다. 이 조합이 모든 아이의 불안을 줄인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아이에게 친근한 공간을 만들려는 의도가 색과 가구의 형태에 담겨 있다는 점은 읽어볼 만하다.
사진에서 느낀 편안함, 연구에서는 어떨까?
이런 사진을 보다 보면 궁금해진다. 보기 좋은 공간이 환자가 기다리는 동안의 기분에도 영향을 줄까.
2012년 발표된 한 연구는 네덜란드 한 병원의 대기실 두 곳에서 환자 457명을 조사했다. 실제 식물, 식물 사진 포스터, 자연 요소가 없는 조건을 비교한 것이다. 식물이나 포스터가 있는 조건과 없는 조건을 각각 비교했을 때 스트레스 차이가 보고됐다. 다만 효과는 작았고, 세 조건을 한꺼번에 비교한 분석에서는 통계적 유의성이 확인되지 않았다. Beukeboom 외, 2012
한 병원의 대기실에서 자연 요소를 다룬 결과인 만큼, 예쁜 인테리어 전반의 효과로 넓혀 읽기는 어렵다. 그래도 창가의 풍경이나 자연 사진처럼 환자가 기다리는 자리에서 보이는 것을 함께 생각해볼 단서는 된다.
우리 병원의 한 자리에서 시작하기
다시 처음에 눈길을 붙잡았던 사진으로 돌아가 보자. 우리 병원에 가져오고 싶은 부분을 한 가지 고른다면 무엇일까.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빛일 수도 있고, 창가의 의자 한 자리나 벽의 차분한 색일 수도 있다.
‘이 병원처럼 꾸미고 싶다’는 생각에서 한 걸음 더 들어가, 어떤 장면이 좋았는지 구체적으로 말해보는 것이다. 그다음에는 우리 공간에서 비슷한 장면을 만들 수 있는 자리를 찾아볼 수 있다.
물론 사진 밖의 일상도 함께 생각해야 한다. 보기 좋은 의자에 앉고 일어나기 쉬운지, 부드러운 조명 아래에서 안내문을 읽을 수 있는지, 가구 사이로 환자와 직원이 편하게 이동하는지 확인해보자. 사진에서 마음에 든 요소를 우리 병원의 진료 방식과 공간 조건에 맞춰 읽는 과정이다.
진료 전후 잠깐 대기실 의자에 앉아보면 어떨까. 앉는 순간 가장 먼저 보이는 것, 빛이 닿는 곳, 자연스럽게 시선이 머무는 곳을 바라보자. 방금 저장한 사진과 우리 대기실 사이에서 바꿔보고 싶은 한 가지가 떠오를 수도 있다.
우리 병원에 어울리는 아름다움은 그 한 자리에서부터 생각해볼 수 있다.
병원의 공간과 환자 경험을 함께 생각하고 싶다면 환자가 다시 찾는 병원은 무엇이 다를까?도 이어서 읽어볼 수 있다.
